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 자 :무라카미 류
  • 출판사 :작가정신
  • 출판년 :2014-02-05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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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속에 숨어 있는 관능과 추억 일깨우기



일본의 하우스텐보스 호텔 주방장인 가미가키모토 마사루 씨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소설 속에는, 다양한 장면에서 다양한 요리가 등장하고, 때로 요리 그 자체가 등장인물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묘사의 치밀함, 그리고 대담한 표현을 대할 때마다, 우리들 요리사보다 더 뛰어난 미각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감의 모든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그런 묘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이 소설집에서 무라카미 류는 최고급 프랑스 요리에서 패스트푸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미각뿐만이 아니라 오감을 총동원하여 우리들 속에 숨어 있는 관능과 추억을 일깨운다.



뉴욕의 고급매춘굴에서 만난 초능력의 치과의사, 튀어나온 작은 돌기가 두려워 콩알(클리토리스)이 없는 여자를 꿈꾸는 남자, 헤픈 여자를 아내로 둔 남자, 토플리스 바의 한국인 여자 댄서, 유명 브랜드를 미친 듯이 쇼핑해대는 남자, 새카만 똥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을 하며 울음을 참는 이혼남, 너무 아름다워서 무서운 여자, 주인공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유부녀 등 이 소설의 화자(話者)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는 항상 특별한 음식이 자리한다. 무스 쇼콜라, 핫도그, 자라 요리, 상어 지느러미 수프, 생선 이리, 트뤼프, 부야베스, 산초된장, 오리 푸아, 훈기 포리티니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에서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들의 맛과 향의 향연이 벌어진다.



무라카미 류는 이러한 음식들을 맛보고 느끼고 냄새맡는 우리의 오감(五感)을 통해 어떤 상처도 없고, 어떤 이데올로기도 침투되어 있지 않는 시원(始原) 상태를 지향하고 욕망한다. 그리고 혀로 느끼는 맛을 통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음식은, 되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나이 든 한 남자를 센티멘털에서 지켜주기도 하고, 실물을 보고 그만 꿈에서 깨어난 한 여자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도 하고, 아들과의 추억을 찾아 테니스장을 찾은 노인으로 하여금 옛날 행복했던 시절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고, 자신 안의 어떤 부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아득히 먼 시원의 기억을 일깨우기도 한다.



때로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는 그 자체로서 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무스 쇼콜라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은 헤어짐이 괴로우면서도 결코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아는 연인들의 마음이기도 하고, 먹고 난 직후 격렬한 상실감이 엄습해오는 트뤼프는, 세상에는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중년남자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처럼 무라카미 류의 이 소설집에는, 요리사가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정열과 같은 미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잘 음미한 언어에 집중하고, 진솔하게 대처하여, 독자에게 작품을 선보인다. 마치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갖고 손님에게 최고의 요리를 맛보게 하는 것처럼.





주요 내용



*열한 번 성형 수술한 여자 - 로스트 프라임리브스

나는 한 달에 한 번 대학에서 <영화론>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가 끝나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모르는 여자였다. 그 여자가 이름을 말하면서, 내가 두번째 감독한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고 했다. 그러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는 성형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성형 수술한 그녀에게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술이라도 한잔하자는 여자를 따라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전부, 얼굴을 전부, 열한 번, 수술했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성형 수술을 하자 부모님이 울었다는 것, 결혼을 두 번이나 했지만 아이는 없다는 것, 지금은 한 남자의 세컨드로 살고 있다는 것, 내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 등을.



술을 마신 후,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와 그 여자는 저녁을 같이 먹었다. 나는 로스트 프라임리브스를 먹었다. 웨이터가 잘라준 짙은 핑크색 살코기를 입 안으로 넣었다. 입 저 안쪽의 점막을 아기의 혀가 애무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배어나온 육즙이 목을 자극하여 바르르 떨렸다. 그때 그 여자의 얼굴이 드디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여자와 했던 섹스도 생각이 났다.

호텔방에서 만진 그 여자의 엉덩이는 부드러웠다. 마치 아까 먹은 프라임리브스 같았다. 키스해달라는 여자의 말에 그녀의 두 볼을 손으로 감쌌을 때 피부 아래쪽 살이 움직였다. 마치 달걀을 찌부러뜨리는 감촉이었다. 여자는 볼에 넣은 실리콘이 때로 비틀어진다며 볼을 이리저리 만졌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의 볼에 들어 있는 실리콘을 움직여보았다. 아마도 그 실리콘은 프라임리브스의 내용물처럼, 이미 육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아름다워졌다고 여자는 믿고 있다. 짙은 핑크색 살코기가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트렁크에 얽힌 로맨티시즘 - 바닷가재 요리

비행기 시간을 착각하여 출발 다섯 시간 전에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고 말았다. 파리에서 영화관계자들의 심포지엄이 있어서 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른 아침시간, 사람도 거의 없는 공항 로비에서 투덜대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둥근 얼굴의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어디 가세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파리에 간다는 내 대답에 그녀는 왠지 반가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의자 곁에 둔 가죽 트렁크를 가리키며, 잠시만 봐달라고 하고는 화장실과 레스토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그녀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녀는 한 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나는 그 트렁크를 내 옆으로 당겼다. 트렁크는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고, 트렁크 밑에는 작은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 트렁크를 센 강에 버려주세요. 트렁크에는 위험한 물건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비었습니다. 가능하다면 퐁네프라는 다리 위에서 버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녀의 화사한 미소가 힘을 발휘한 것인지, 나는 그 기묘한 부탁을 무시해버리지 못했다. 샤를 드골 공항에 마중나온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지금 파리는 테러소동으로 경비가 삼엄하다며, 센 강에 그걸 버리다가 들키면 당장에 체포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도 무시해버리고, 호텔로 가지고 갔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나는 그 친구와 그의 걸 프렌드 스웨덴 아가씨와 셋이서 바닷가재를 먹으러 갔다. 우리는 삶은 가재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처음 한 입에 흥분하였고, 아름다운 껍질을 깨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친구는 바닷가재를 모르는 것은 세계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까지 말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오자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낡은 트렁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긴장하면서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센 강으로 가, 트렁크를 던져넣었다.

일주일 후, 공항에 전송 나온 친구에게 트렁크를 버렸다고 말했다. 아마도 트렁크는,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의 아버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것이고, 최근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나는 제멋대로 상상해보았다. 그는 화가 지망생이었고, 퐁네프를 주로 그렸지만, 화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등등. 친구는 나의 이런 상상을 듣고, 그런 로맨티시즘을 빨리 버리지 않으면 영원히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없어, 하고 웃었지만, 트렁크의 주인이 겨울 가재를 먹어보지 못했을 거라는 내 의견에 대해서만은 동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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